▲ 김우영 기장소방서장
항상 긴장상태인 직업 특성상 주말과 같은 여가시간에는 해변산책로나 갈맷길을 찾아 걷곤 한다. 복잡해진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차곡차곡 정리되는가 하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에는 심신이 건강해 지고 회복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이것을 ‘힐링(Healing)’이라고 부른다. 굳이 해석하자면 ‘힐링’은 ‘치유’라고 부를 수 있다.

힐링은 그리스어 ‘홀로스(holos)’에서 유래해 건강(health)과 어원이 같다. ‘Heal(치유)’에 ‘Therapy(치료)’의 두음을 합치면 ‘Health’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현대인들은 ‘건강(health)’을 위해 정신적 ‘힐링(healing)’과 육체적 치료 ‘테라피(therapy)’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다.

치유와 치료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예전부터 쓰던 표현으로는 ‘요양(療養)’이 있다.

‘요양(療養)’의 사전적 의미는 ‘휴양하면서 조리하고 병을 치료함’이다. 의료법에서 정한 개념과 별개로 요양병원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위에서 말한 ‘치유’와 ‘치료’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의료시설임을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찾는 시설물에서 불가역적 인명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5년만 보더라도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로 21명 사망, 밀양 세종병원화재로 47명 사망, 지난 9월24일 김포요양병원 화재로 2명의 사망자와 4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요양병원 화재는 매우 심각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화재 시 위험천만한 요양병원 대책은 없는가?

2015년 장성요양병원 화재 이후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화했듯이 소방시설 강화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지만 인허가 절차에서 부터 근본적으로 생명 최우선을 전제로 하는 인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정책변화가 시급하다.

완강기, 피난사다리 등 소방법규에서 정한 피난기구들은 수직탈출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법상 요양병원이라고 해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피난계단이나 옥외피난계단 등과 같이 건축 관계법령에도 용도별, 면적별, 층별로 기준을 두어 건물의 규모와 용도에 맞는 피난대피시설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한 경우를 예상한 수직탈출 방법에 기반 한다.

요양병원은 대표적인 피난약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각종 의료장비가 세팅돼 있고 병상에 누워 평상시에도 부축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유사시 자력으로 수직탈출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전국의 요양병원 수는 2019년 통계 기준 1571개소이며 5년 전에 비해 약 20% 증가했고 3층 이상인 요양병원이 전체요양병원의 약 93%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요양병원의 수요와 공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인명피해가 반복되는 것은 효과적인 피드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화재시 다수인명피해 위험성이 높은 업종에 대해서는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별도 관리하고 있으나 요양병원은 특별법 관리대상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스프링클러설비 설치와 같은 소화설비 강화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요양병원과 같이 피난약자가 24시간 이용하는 시설물은 유사시 피난대피가 가장 중요한 사항임을 직시해 건축허가 단계부터 피난이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요양병원과 같은 특정소방대상물에 대해서는 층수제한 등 특별 관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허가단계부터 2층 이하로 제한하거나 수평탈출을 가능케 하는 구조로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층수 제한이 어렵다면 용적률 적용 시에 요양병원 등 다수인명피해 우려 대상에 포함되는 용도의 시설물은 층별로 가중치를 주는 ‘화재안전 용적률’ 개념 도입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용적률을 계산할 때 대지면적에 대비한 각 층 바닥면적 중 요양병원등 다수 인명피해 우려대상 용도로 쓰는 층은 바닥면적에 가중치를 더하여 계산하는 것이다.

저층일수록 가중치를 줄여 1층이나 2층에 두는 경우에는 마이너스 가중치를 둬 자연스럽게 요양병원 등 다수인명피해 우려대상 시설물을 저층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유사시 적은 인원으로도 수평탈출을 가능하게 만든다.

수평적 피난개념으로서 요양병동 각각의 층에 방화 구획된 별도의 피난공간을 의무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기술개발과 병행하는 제도개선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다수인 피난장비’의 형식승인에 입원환자용을 추가해 소방산업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고층요양병원에는 (환자용)다수인 피난장비를 의무설치토록 하는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안전에 투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경제발전에서 환경, 복지, 안전을 도외시 하지 않는다. 안전은 인권존중의 관념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곧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된다.

비용이 들어도 우선적으로라도 피난약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설계는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생명존중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

안전을 복지의 개념으로 이해해 추후 용도변경을 통해 저층으로 옮기는 요양병원에는 복지예산 일부를 지원해 주는 국가지원사업 추진도 생각해 볼일이다.

미국의 유명한 임상심리학자 에브러햄 매슬로우(A․H Maslow)에 따르면 안전은 인간의 5가지 욕구 가운데 생리적 욕구와 함께 가장 기본적 욕구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실생활에서 이것을 간과하며 살고 있지 않나 싶다. 건축물 안전대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2019년 9월30일
김우영 기장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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