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이제껏 걸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처음 들어선 낯선 길을 걸으며, 정답이 없는 질문의 답을 찾아야만 했던 2020년은 어쩌면 ‘살아가는’ 삶의 시간이 아니라 ‘살아내는’ 주검의 시간이었다.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19가 길을 막았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경제적 충격이 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월세를 못 낸 자영업자의 눈물은 강을 이루고, 실직한 가장의 처진 어깨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실적 압박을 견뎌내는 신음에 땅이 꺼지고, 수출계약 취소에 한숨만 기업의 곳간을 채워가는 마당에 코로나19의 ‘3차 유행’이 진행 중이라는 11월20일 정부발표에 억장이 무너진다.

11월22일 0시 기준 누적 확진자는 3만733명이고 사망자는 505명이며, 서울의 누적 확진자는 7513명으로 2∼3월 1차 유행의 중심지인 대구의 7213명을 이미 추월했다. 전날 신규 확진자는 330명으로 5일째 300명대의 신규 확진가 발생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지난 2~3월의 1차 유행과 8∼9월의 2차 유행에 이어 벌써 11∼12월의 3차 유행이 시작됐다고 공식화하고 있다.

11월19일 0시를 기해 수도권과 강원도 일부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로 격상했지만 첫걸음을 떼자마자 곧바로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면서 K방역도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방역당국은 “현재의 확산세를 차단하지 못하면 전국적 대유행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11월20일 오전 대국민담화문을 내고 “지금의 확산 속도는 지난 2월 대구·경북에서의 위기 상황과 흡사할 정도로 매우 빠르다”며 “가족 모임, 친목 활동, 수영장, 사우나,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강조하고 “연말을 맞아 계획하고 있는 각종 모임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고 필수적인 활동 이외에는 가급적 집안에 머물러 주시라”고 호소했다.

지난 1차와 2차의 유행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일단 증가세가 시작되면 곧바로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태로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을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려했던 재유행이 현실로 나타나 안전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금요일 등교수업을 중단한 학교가 전국 9개 시·도에 162곳으로 두 달 만에 가장 많았다. 학생·교직원 확진자도 하루 30∼40명대로 급증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9명의 감염자가 쏟아졌고, 순천에서는 수험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학생·교직원이 전수조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남 하동·창원과 광주 등에서도 학교발 확진자가 잇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집단감염은 고위험시설이 아닌 직장이나 학원, 친목 모임 같은 일상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다. 11월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에서 32명이 무더기 확진을 받은 것을 비롯해 수도권 동창 골프 모임과 연세대 학생모임 등도 추가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또 최근 일주일간 40대 이하 확진자 비율이 52.2%로 나타났고. 이는 전주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것을 감안할 때 60세 이상의 연령층은 물론 젊은이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국민 모두의 자발적인 방역 협조가 없으면 제1차, 제2차 유행 때보다 대응이 훨씬 더 어려워질 개연성이 크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도 브리핑에서 “수도권의 환자 증가 추세가 1주간 하루 평균 200명에 도달하는 등 2단계 기준을 충족한다면 1.5단계 적용 기간인 2주가 지나지 않더라도 2단계 격상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때마침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11개 의료 전문가 단체가 “지금 이 상황대로 가면 1~2주 내 환자가 1000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등을 포함해 조기 강력 대응하라고 방역 조처 강화를 촉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서 1.5단계로의 격상은 실내체육시설·식당·카페·결혼식장·클럽·노래방 등의 면적 4㎥당 1인, 스포츠 관중 최대 30% 허용, 초·중·고 전교생의 2/3 이하 등교, 종교 활동 시 소모임·식사 금지, 축제 등 일부행사 100인 이상 참여 금지 등 시설별 이용 인원이 달라질 뿐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면 유흥주점 등 중점관리시설은 영업이 중단되고, 식당 영업시간은 줄어들고 카페 등은 포장만 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더없이 막심해지고 시민의 일상생활은 크게 위축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제약과 더 큰 제제를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개인과 가계는 물론 국가경제는 뿌리채 흔들릴 수도 있다.

통계청이 11월11일 발표한 ‘2020년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15~64세 고용률(OECD 비교기준)은 65.9%이고,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2.3%이며, 실업률은 3.7%이고,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3%이며, 취업자는 2708만8000명에 그쳐 그야말로 최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세계 경제는 당장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러한 엄청난 재앙인 ‘3차 유행’만은 원천 봉쇄하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초윤장산(礎潤張傘), 거안사위(居安思危), 상두주무(桑土綢繆)의 자세로 한발 앞선 유연한 선제적 대응만이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 방역당국은 중환자 전담치료병상과 격리 음압병상 확충은 물론 생활치료센터와 격리시설도 충분히 확보해둬야 할 때다.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외에는 해답이 없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각종 모임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행정관서와 기업들도 비대면의 재택근무를 최대한 활용토록하고, 밀폐·밀집·밀접 등 이른바 '3밀(密)' 환경을 피하고, 수시로 환기를 잘 하며, 철저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발열 측정, QR 체크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 모두가 위중하고 엄혹한 시기임을 각별 유념하고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방역수칙 준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과 확보는 그 무엇보다도 화급(火急)하다. 미국은 연말까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을 식품의약국(FDA) 승인 후 4000만회 투여하고 내년 봄·여름에는 국민 대부분에게 접종할 것이라고 한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국도 조기 백신 접종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정부는 간과하지 말고 결연한 의지와 각오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20년 11월22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저작권자 © 세이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