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지난 12월25일 새벽 4시57분 경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23층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아파트 주민 2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다쳤다. 

관할 도봉소방서에서는 신고 접수 2분 만에 출동, 선착대 도착 즉시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60대의 장비와 312명의 인력을 투입해 3시간 만인 이날 오전 8시40분 경 불길을 완전히 진화했다. 

해당 아파트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전 완공돼 방화문이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시간이라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으나 그나마 소방의 신속한 대응으로 최악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소방과 경찰은 12월26일부터 합동 현장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도봉구청은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리고 재난 구호 키트 등을 제공하는 등 이재민 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는데 이날 화재로 인한 피해를 17가구가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재민은 8세대·23명으로 인근 모텔에서 임시 거주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라인 10층에서 70대 부모님, 동생과 함께 잠을 자던 임모(38)씨는 119 화재 신고를 한 뒤 가족을 깨워 대피시키고 마지막으로 탈출하다 결국 11층 계단에서 연기 흡입으로 숨진 채 발견됐고 4층 거주자 박모(32)씨는 아래층(3층)에서 불길이 치솟자 “아이를 받아 달라”고 외치다가 이불로 감싼 생후 7개월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으나 머리 쪽을 다쳐 안타깝게 숨졌고, 아내는 2살인 아이를 재활용품 포대 쪽으로 던진 뒤 역시 뛰어내렸으나 어깨 골절상을 입어 입원 치료 중이다. 

두 아이는 무사히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20층에 사는 박모(71)씨와 남편 유모(79) 씨는 함께 집 앞 복도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박씨가 심폐소생술 끝에 회생하는 등 두 사람 모두 의식을 되찾았다. 

화재가 처음 발생한 3층 거주 70대 노부부도 불을 보자마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생명을 건졌다. 이들은 허리 통증과 연기 흡입에 따른 고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가슴 아프게 유명을 달리하신 두 분의 명복을 빌며 치료 중인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와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발화지점인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외벽을 타고 위층으로 순식간에 번졌고 화재로 발생한 화염과 검은 연기는 아파트 내부 계단 통로가 굴뚝 역할을 하면서 삽시간에 바로 위층과 고층으로 확대되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을음이 15층에서 발견됐을 정도다. 투입된 소방관들이 불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화마는 아파트를 집어삼켰다. 3층에서 발생한 불이 커져 12층까지 아파트 외관이 그을릴 정도로 불이 높이 올라갔다. 

무엇보다도 피해를 키운 건 연기였다. 불이 난 직후 연기가 계단을 통해 급속도로 고층까지 퍼져 피해가 확대됐다. 11층에서 사망한 임모(38)씨의 경우 대피 과정에서 계단 내 연기를 흡입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 주민들도 짙은 연기로 인해 탈출이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내 마련된 임시대피소로 피신한 한 주민은 “화재 당시 연기로 인해 어디가 계단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실내가 컴컴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계단과 복도를 가득 채운 연기에 대피하지 못하고 베란다에서 구조되기를 기다린 이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해당 아파트에는 방화문이 설치돼 있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로 연기가 각 세대로 급속히 퍼져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16층 이하 가구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2001년 10월29일 사용승인(완공)을 받았는데, 당시 소방법은 16층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16층 이상부터만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방화문 설치 규정도 없었다. 2004년 5월30일에서야 11층 이상 공동주택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와 방화문을 설치하도록 규정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깊이 잠에 빠져든 새벽 시간에 발생한 화재였다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현관문 밖에 화재경보기가 설치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지만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박모(15)군은 “오전 5시 경 화재경보기가 울리긴 했다”며 “한 달에 네 번 정도는 오작동이 있어 주민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안전 의식의 결여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저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무조건 뛰어내리기보다는 화장실 욕조 등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한다. 저층에서 불이 나고 계단을 통해 연기가 올라오는 경우, 물을 묻힌 옷가지 등으로 일단 문틈을 막아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고, 베란다를 통해 불길이 올라오면 창문을 막고, 화장실 욕조에 물을 채운 뒤 대피하는 것이 좋다. 

또 설치된 방화문은 스토퍼 등으로 막아놓지 말고 항상 닫아놓아야 하며 각각 세대별로 단독경보용 화재감지기를 설치해 조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유익한 방법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휴대용 방독면을 비치해 두는 것도 유사시 효과적일 수 있다. 

아파트 화재는 발화층보다 그 직상층 그리고 차상층 순으로 위험하다. 또 화재가 발생하면 열기로 인해 뜨거워서 뛰어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고층에선 머리부터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매우 위험하다. 대피가 최우선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는 물을 틀어 놓은 채 화장실로 대피하고, 소방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대형화재는 1971년 12월25일 오전 9시50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로 163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한 악몽이 떠오른다. 

이날도 오후 4시 경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도금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청 통계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2019년 1월1일 〜 2023년 12월25일)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전국에서 1만4047건이 발생해 171명이 사망하고 1562명이 부상해 연평균 2809건의 아파트 화재로 34.2명이 사망하고 312.4명이 부상한다. 

올해에도 12월25일까지 2928건의 아파트 화재로 32명이 사망하고 325명이 부상했다. 우리의 일상의 안식처인 아파트가 죽음의 장인 사지(死地)가 되지 않도록 화기 안전 취급 등 불조심을 생활화해야만 할 것이다.  

2024년 12월27일

박근종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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